장덕 - 6집 "예정된 시간을 위해" (1989)(유작 앨범)
장덕 - 6집 예정된 시간을 위해
안타깝게 요절한 가수 장덕님의 마지막 유작 앨범입니다. 61년에 태어나 90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만 30년을 채 살지 않았습니다. 저도 학창 시절에 '님 떠난후'를 즐겨 들었고, 또 마지막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예정된 시간을 위해'를 좋아했던 기억입니다.
장덕은 오빠인 장현과 같이 10대 중반때부터 듀엣으로 출연료를 받으며 공연을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방송계에 데뷔하게 되었고, 남매 듀엣명을 '현이와 덕이'로 바꾸며 (이전에는 '드래곤 래츠') 본격적인 활동을 합니다. 장덕은 고1때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가수 뿐 아니라 배우로도 나름 활동을 제법 했습니다.
송창식의 후원으로 장덕이 중2때 작사, 작곡한 노래인 '소녀와 가로등'을 당시 신인가수였던 진미령씨에게 주어 1977년 제1회 MBC 서울가요제 (2회때부터 국제가요제로 전환)에 작사가, 작곡가로서 출전하게 됩니다. 진미령씨가 장덕보다 3살 나이가 많았지만 그래도 만 스무살이 안되어 당시 동영상을 보면 완전히 앳된 모습입니다. 하지만, 장덕은 당시 만 16세의 나이임에도 작곡가로서 지휘를 하는 모습은 정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다고 보여집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장덕은 작곡을 주로 기타를 이용해서 한다고 말합니다 ^^ 당시 가요제는 작곡가가 같이 무대에 오르는 것이 규정이었다고 합니다.
장덕은 1978년 2회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는 오빠 장현에게 '더욱 큰 사랑'이라는 곡으로 제공하였고, 1979년 3회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는 박경희님에게 '사랑이었네'를 제공하여 3년 연속 작사, 작곡가로서 출전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합니다.
1980년에 어머니가 살고 있는 미국 테네시주 내쉬빌 (컨트리 뮤직의 본거지로 알려져있는)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거기서 음악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게 됩니다. 만 스무살이 넘은 나이인 1981년에 당시 한인회 밴드였던 멤버와 결혼을 하기도 합니다. 2년뒤인 1983년에 이혼을 하였고, 고국에 대한 향수병으로 결국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귀국후에 음반을 발표하며, '날 찾지 말아요'로 인기를 얻었으며, 작곡가로서 곡을 제공하기도 했고, 영화의 음악 감독을 맡기도 했습니다. 1984년에 발표한 2집이 실패를 하자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 오빠 장현이 다시 연락하여 현이와 덕이를 재결성하게 됩니다. 1985년 7년만에 재결성된 현이와 덕이는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를 히트시켰으며, 1986년에 장덕은 이은하씨의 앨범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에서 다수곡을 작사/작곡했고, 타이틀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를 작곡하여 이은하씨가 큰 인기를 얻는데 일조를 합니다. (작사는 이은하씨) 여기서 그냥 들으면 놀랄만한 사실은 장덕양과 이은하씨가 1961년 출생 동갑내기이고 절친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은하씨의 나이든 모습을 자주 봐서 그렇지, 사실 이 노래를 부를때도 이은하씨는 만 25세에 불과했습니다. 장덕양은 요절해서 나이든 모습이 없어 우리 기억속에 항상 젊게 남아있다 보니, 둘이 동갑이라는 사실이 선뜻 다가오지않는게 어찌 보면 정상일듯 하네요 ^^;
장덕은 같은해인 1986년에 솔로곡 '님 떠난후'로 큰 인기를 얻으며, KBS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골든컵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한창 활동을 잘하고 있을때, 1989년 오빠 장현이 설암 판정을 받게 됩니다. 얼마후 장덕의 6집인 "예정된 시간을 위해"를 발표하며 타이틀곡이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작사/작곡에 상당한 재능을 가졌던 장덕은 커버곡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발표된 거의 모든 곡을 다 자신이 작사/작곡했고, 이 6집 앨범 또한 전곡을 작사/작곡하는 능력을 보였습니다. (5집에선 김범룡 등 동료의 곡을 일부 부르기도 했습니다) 신보를 발표하고 한창 활동해야 했지만, 오빠의 암 간호를 위해 활동을 중단했고, 장덕마저 불면증에 걸려 수면제에 의존하게 됩니다.
1990년 2월초, 감기약과 기관지 확장제, 수면제 3가지를 복용했는데, 약물 복합에 의한 쇼크로 사망하게 됩니다. 당시에 자살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과로, 감기, 불면증이 겹쳐서 약의 부작용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오빠 장현도 6개월 뒤인 1990년 8월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의 유작 앨범이 되어버린 6집의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해'를 두고서 발매 초기에는 오빠 장현의 투병을 예견했다고 했고, 장덕이 세상을 떠난뒤에는 제목이 그냥 나온게 아니라 뭔가 본인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었다는 등의 추측성 얘기가 많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여성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배우, 가수 활동뿐 아니라 작사/작곡도 활발히 하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장덕의 작품 개수가 2021년 기준으로 총 136개라고 합니다. 10대때부터 음악을 만드는데 엄청난 재능을 가진 장덕이었으니, 만약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얼마나 수많은 명곡들을 우리에게 들려주었을까 생각하면, 더욱 더 아쉬움이 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