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초에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이태원의 새 시리즈 '솔개', '고니'와 '타조'입니다. 이태원씨는 당시 이들 새(bird) 시리즈로 인기를 많이 얻었었죠.
'솔개'라는 노래가 최대의 히트작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타조'를 더 선호합니다. 왜냐구요? 진짜루 모르시나요? 어~ 정말? 그래도 모른다면 할 수 없죠. 계속 주우욱~ 모르셔도 됩니다. ㅋㅋ
이태원씨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 위해 여기저기서 오래전(7년전? ㅎㅎ) 짜집기를 열심히 했던 글이 아래입니다. 제가 이태원씨랑 친분이 없다보니 인터넷에서 정보를 구할 수 밖에 없었다는.. ^^;;;
아래 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70년대부터 상당히 유명하셨던 통기타 가수입니다. 아세요? 아시는 분은 연세가 저보다 좀 많이 되신... ^^;
이태원 - 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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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 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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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 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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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 여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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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제법 길다보니, '더보기'를 통해 소개하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더보기'를 클릭하시고, 노래만 듣고 싶으신 분들은 플레이 버튼만 누르세요~ ㅎㅎ
이태원씨는 48년 경기도 시흥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런 것까지 알 필요가 있을까만은.. ^^;) 아버지가 체신부 차관까지 역임했던 아주 보수적인 분이셨답니다. 초등학교 시절(당시는 국민학교였겠죠?) 숫기는 없었지만 학예회때면 동요를 씩씩하게 불러대어 무대를 사로 잡았었다고 하구요.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성격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신문기자 출신인 누나로부터 외국 팝송을 접하여 Beatles, Rolling Stones, Bob Dylan, Everly Brothers 등의 락, 포크 가수들의 음악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엄격한 아버지의 눈을 피해 학교 근처의 음악 학원에서 전자 기타를 몇개월 배운뒤, 실력이 늘어난 기타 솜씨는 소풍때마다 인기를 끌었다네요. 하지만, 엄격한 아버지때문에 직업가수가 되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66년 한양대 수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태원씨와 수학이라.. 좀 어색합니다. ㅎㅎ) 대학 2학년때 기타 잘친다는 소문을 듣고 이태원(지명임 ^^) 미8군 클럽의 5인조 락그룹 "영 바이블즈" 멤버들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들은 서울대, 성균관대생들로 구성되었는데, 리듬 기타를 치던 멤버의 군입대로 이태원이 그 자리를 메꾸었다 하네요.
한때는 학업과 음악 활동을 병행했지만, 졸업을 포기할만큼 음악에 빠졌다네요. 미8군 클럽을 주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중, 67년에 한 미군 해군중사가 지어준 shagreen(푸른 상어)이라는 이름으로 5인조 록그룹 <쉐그린>을 창립하여 몇년동안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그는 평생의 음악 친구 전언수씨와 같이 70년에 락그룹 "미도파스" 1기로 참여하여 제2의 음악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룹 '미도파스' 시절 이태원과 전언수는 둘만의 활동을 가끔씩 하였는데,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군요. 둘만의 활동을 마음에 품고 있던 중 그룹의 리더였던 이필원씨가 박인희씨와 듀엣을 결성해 독립하자 70년 중반 드디어 둘만의 듀엣인 '쉐그린'을 결성하게 됩니다. 이름이 예전 활동하던 5인조와 같죠?
이들은 이후 '트윈폴리오' 이래 최대의 포크 열풍을 몰고오며 대학가 축제때 단골손님으로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그들에게 첫번째 시련이 찾아온 것은 데뷔곡 '추억'의 작곡자가 일본곡을 카피했던 것으로 알려져서 왜색가요로 낙인찍히며 방송금지 조치가 되어 방황을 하며 해체를 하게 되었다구요.
듀엣 해체후 73년 이태원씨와 전언수씨는 각자 솔로 앨범을 내며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때 종로에 음악살롱 "쉘부르"가 오픈하면서 DJ 이종환씨의 강력한 권유로 둘은 재결합하게 됩니다. 다시금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그들은 가요정화운동으로 불리우던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면서 또 다시 헤어지게 됩니다.
형편이 넉넉치 못했던 전언수씨는 생계를 위해 친형인 전항씨, 권성희씨와 <세샘 트리오>를 구성하며 음악적 변신을 꾀했지만 84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현재는 뉴욕에 정착하여 한인 방송국에서 DJ를 하며, '쉐그린'이란 카페를 오픈하여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2000년에는 이태원씨와 함께 뉴욕 '쉐그린'에서 공연하여 뉴욕 교민들에게 대단한 반응을 얻었다고 하네요.
이태원씨는 76년 도미하여 친척의 옷 도매상에서 일하다 78년 귀국하여 세운상가에서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사업가로 재기하게 됩니다. 이들에 대한 금지족쇄는 1980년에 풀렸는데, 고무신 장사로 거덜난(갑자기 고무신 장사로 왜 거덜났는지는 아무리 뒤져도 안나오네요.) 그는 82년에 이종환씨의 도움으로 '솔개'가 수록된 솔로 앨범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고니', '타조' 등의 새이름으로 연달아 히트곡을 내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칩니다.
83년 방배동에 까페 "솔개"를 오픈하며 자유로운 음악 활동을 하던 그는 98년에 위암 수술을 받은데 이어 2000년에는 뇌졸증으로 뇌수술까지 받게 됩니다. 이후에도 카페 공연 등을 꾸준히 하며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이 포스팅을 처음 한 것이 2003년인데, 그 당시 자료를 참고했던 사이트 3곳이 모두 지금은 접속불가입니다 ^^; 그래도 일단 출처는 밝힙니다.
어렸을때부터 무엇에 이끌렸는지 저의 애창곡은 항상 타조였죠.
지금 그 가사를 되뇌여보면 얼마나 좋은 노래인지..
이번 mbc에서 하는 스타오디션 프로에 타조로 신청했는데...
오늘 전화왔습니다. 1차오디션 합격했다고요....
타조의 꿈처럼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항상 희망을 가지고
땅을 차렵니다. ^^ 답글
타조님보다 연세가 좀 많이 되신 구름아줌에게 친숙한 노래네요 ^^ 라디오에서 엄청 많이 들려서 가사를 못외울래야 못외울 수 없는 노래였지요. 정말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예요.
그런데 타조는 모르는 노래인줄 알았더니 들어보니 아는 노래였어요. 큭
답글
ㅎㅎ 구름누나! ㅋㅋ
솔개 노래는 정말 자주 라디오에서 나왔었지요.
타조도 다들 들어보면 멜로디를 안다고 하더라구요. ㅎㅎ
나름 숨어있던 히트곡? ㅋㅋㅋ
예전에 공장사람들끼리 노래방갔을때 남자 두분이서 솔개를 화음넣어서 멋들어지게 불러준 기억이 나네요.
답글
오~ 솔개를 화음으로..
노래 잘 부르는 분들은 멋지게 할 것 같아요.
ㅎㅎㅎ 고무신 장사의 오빠 멘트에서 빵 터졌어요.
역경을 딛고 좋은 노래 들려 주시는 진정한 가수시네요.
오빠 덕분에 타조 노래는 몇 년이고 두고두고 홍보가 될 듯해요.
새폴더 만들기의 새 이름 같이 여러 새 노래가 더 있었으면 대박일꺼 같은데 ㅎㅎ
답글
ㅋㅋ 고무신!
새 시리즈 노래들 다들 좋았어!
새폴더의 새이름 그거 다 만들려면 수십년 걸리겠다. ㅋㅋ
어렸을때부터 무엇에 이끌렸는지 저의 애창곡은 항상 타조였죠.
지금 그 가사를 되뇌여보면 얼마나 좋은 노래인지..
이번 mbc에서 하는 스타오디션 프로에 타조로 신청했는데...
오늘 전화왔습니다. 1차오디션 합격했다고요....
타조의 꿈처럼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항상 희망을 가지고
땅을 차렵니다. ^^
답글
오!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타조를 애창곡으로 삼으시다니. ㅎㅎ
노래 멜로디와 가사가 너무 좋지요.
타조의 꿈이 되시길 꼭 바라겠어요! 화이팅!
정말 엄청즐겨불렀었는데 이렇게다시들어보니 감개가 무량하네요.요즘도 타조를 즐겨부르죠.다만 아쉽다면 ^여인아^ 라는노래가 정말좋은데 없어서 조금아쉽네요.1주일에한번은이곳에서 노래듣고갑니다.감사요
답글
흐아~ 이곳에 답글 다는 것을 제가 잊었었군요. ㅎㅎ 죄송합니다. '여인아'도 음원 추가하였습니다. ^^
3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저도 타조는 들으니까 알겠던데요... -_-;;;;;
그럼 제가 이상한건가요? ^^;;;;;
답글
음.. 뭐 이상하기까지는.. ㅎㅎ
타조 노래를 아시니 반갑습니다. ㅋㅋ
가끔 왔다 갑니다 노래가사가 너무 서정적이여서 들어도 들어도
노래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네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답글
네, 이태원씨의 노래가 참 좋죠.
당시 노래가 요즘 노래보다는 더 가슴에 와닿긴 하는가봐요.
마음을 차분하게 그리고 옛추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들이어서 참 좋아요..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