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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독도는 우리땅~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 (리앙쿠르 록스)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by 만물의영장타조 2023.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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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한국, 중국 등을 침범하여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성을 하지 않는 일본인들... 철저하게 역사를 왜곡하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며 아이들을 세뇌시키는 무서운 민족입니다. 뭐 요즘은 중국도 동북공정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고 있으니, 우리나라 양 옆 나라인 중국과 일본, 대체 왜들 이러는지.. 왜 우리나라 이웃들은 이리 또라이 민족들만 있는지 갑갑합니다.

 

 

이전 포스팅이 챗GPT에게 물어본 독도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챗GPT에게 물었다 12탄 [GPT-4] : 독도는 누구땅? 독도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독도는 한국땅? 다케시마는 일본땅? (tistory.com)

 

 

독도에 대해 알아본 김에, 독도에 대한 포스팅을 하나 더 해봅니다.

 

외교부 홈페이지에 "독도" 사이트가 있습니다. 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
https://dokdo.mofa.go.kr/kor/

 

외교부 독도 | 대한민국 외교부 독도

독도,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336호, 독도 동영상, 독도 사진, 독도 정부 입장, 독도 영토주권, 한국 독도

dokdo.mofa.go.kr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라고 첫 화면에 쓰여 있습니다.

 

이 독도 홈페이지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 독도가 왜 우리나라 땅인지, 왜 대한민국 땅인지에 대한 역사적 근거들도 나오고 있고, 독도에 살고 있는 주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독도에 대한 연표도 순서대로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512년부터 독도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신라 이찬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여 신라가 우산국을 복속합니다. 이로써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 역사와 함께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454년 '세종실록'과 '지리지'에 울릉도와 독도가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두 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기껏해야 1625년 문서에 다케시마 얘기가 나옵니다. 우리보다 늦어도 한참 늦습니다.

 

 

 

1946년에, 연합국최고사령관의 각서 제 677호에 독도 얘기가 있습니다.


1월 29일. 연합국최고사령관 각서(SCAPIN) 제677호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의 통치 행정 범위에서 독도를 제외시킨 각서입니다.
연합국 최고사령관은 일본의 영역에서 “울릉도, 리앙쿠르암(독도)과 제주도는 제외된다.”라고 규정하였습니다.

6월 22일. 연합국최고사령관 각서(SCAPIN) 제1033호

 

연합국 최고사령관이 SCAPIN 제677호에 이어 일본의 선박 및 국민이 독도 또는 독도 주변 12해리 이내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한 각서입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하면서 연합국과 일본이 체결한 조약입니다.

이 조약 제2조(a)에서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라고 규정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3천여 개의 도서 가운데 예시에 불과하며, 독도가 직접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고 하여 독도가 한국의 영토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볼 수 없습니다.

 

 

 

 

독도에는 우리나라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1965년 3월에 고 최종덕씨가 최초로 거주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김신열씨, 독도 경비대원 16명, 등대관리원 3명, 울릉군청 직원 2명 등 총 22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23년 1월 기준)

 

2005년 동도에 대한 입도 신고제 도입 이후에 현재까지 약 300만명이 독도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독도의 위치는 울릉도에서 87.4km 떨어져 있고, 일본땅인 오카섬에서는 무려 157.5km나 떨어져 있습니다.

 

 

 

독도는 2개의 큰 섬인 동도와 서도, 그리고 주변의 89개의 부속 도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큰 섬 2개와 자잘한 섬 89개라는 말입니다. 서도에는 주민숙소가 있으며, 동도에는 독도경비대가 있습니다.

 

 

 

독도의 서도와 동도에는 아래와 같은 여러가지 시설이 있다고 합니다.

 

 

 

구글 맵에서 직접 독도의 거리를 측정해보았습니다. 실제 거리와 조금 차이가 나는데, 워낙 넓은 지도이다보니 정확한 위치를 클릭하지 못한 오류라고 보면 됩니다 ^^;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 : 89.5km

오키섬에서 독도까지의 거리 : 155km

 

 

 

마지막으로 위키피디아에는 독도에 대해 뭐라고 쓰여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독도 (Liancourt Rocks)


한국 이름인 독도 또는 일본 이름인 다케시마로도 알려진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일본해에 있는 섬 그룹입니다.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는 두 개의 주요 섬과 35개의 작은 바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섬의 총 표면적은 0.187554평방 킬로미터(46.346에이커)이며 가장 높은 해발 168.5m(553피트)는 서도에 있습니다.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는 천연 가스 매장량이 많을 수 있는 비옥한 어장에 있습니다. 영어 이름인 Liancourt Rocks는 1849년 바위에 난파될 뻔한 프랑스 포경선의 이름인 Le Liancourt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한국이 독도를 지배하는 동안 일본은 이에 대한 주권을 다투고 있습니다. 북한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로, 일본은 시마네현 오키군 오키노시마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는 약 37°14′N 131°52′E.에 위치해 있습니다. 서쪽 섬은 37°14′31″N 131°51′55″E에 위치하고 동쪽 섬은 37°14′27″N 131°52′10″E에 위치합니다.

리앙쿠르 록스는 일본 본토(혼슈)에서 211km, 한국 본토에서 216.8km 떨어져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일본 섬인 오키 섬은 157km, 가장 가까운 한국 섬인 울릉도는 87.4km 떨어져 있습니다.



한국은 2009년까지 Liancourt Rocks에서 건설 작업을 수행했으며, 섬에는 등대, 헬리콥터 착륙장, 경찰 막사가 있었습니다. 2007년에 매일 28톤의 깨끗한 물을 생산할 수 있는 2개의 담수화 플랜트가 건설되었습니다. 한국의 두 주요 통신 회사는 독도에 셀룰러 전화 타워를 설치했습니다.


주권 분쟁

섬에 대한 영유권은 한일 관계에서 지속적인 논쟁점이었습니다. 섬에 대한 역사적 주권 상태에 대해 상충되는 해석이 있습니다.

한국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우산도(한국어: 우산도; 한자: 于山島/亐山島)라는 섬에 대한 언급을 바탕으로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 동국여지승람, 동국문헌비고 등의 다양한 중세 역사 기록, 지도, 백과사전에서 언급됩니다. 남한의 견해에 따르면 이들은 오늘날의 리앙쿠르 암초를 가리킵니다. 이 문서의 일본 연구자들은 우산도에 대한 다양한 언급이 서로 다른 시기에 울릉도에 이웃한 죽도를 가리키거나, 또는 울릉도와 한국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섬을 가리킨다고 주장했습니다. 독도라는 명칭이 처음 인쇄된 것은 1904년 일본의 항해일지에 있었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각각 독도가 자국 영토임을 인정하고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거부합니다.


리앙쿠르 록스(독도)는 1952년부터 한국 해양경찰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조치는 미국이 Rusk 문서에서 Liancourt Rocks에 대한 일본의 주장이 일본의 전후 평화 조약에서 포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술한 후에 취해졌습니다. 1954년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에 대한 언급을 제안했지만, 한국은 리앙쿠르 암초가 반박할 수 없는 한국 영토이므로 한국과 일본 간의 외교적 협상이나 사법적 해결을 통해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믿으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태종실록(太宗實日書)에는 "유산국도(우산국 流山國, 유산국도)에는 60명이 살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417년 정부 보고에 따르면 유산도 주민은 86명이었습니다. 유산국의 지름은 2식(24km), 둘레는 8식(96km)이다."

1417 보고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김인우 경감의 지휘 하에 원정대가 출동하여 우산도에서 대나무, 바다표범 가죽, 모시 생포, 명주, 생강 등 지역 특산품을 공물로 가져왔습니다. 김씨는 우산도 원주민 3명을 데려왔습니다. 김씨는 섬에 15가구가 살고 있다고 보고했고, 주민 수는 86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섬에서 돌아오는 길에 김인우의 원정대는 두 번의 태풍을 만나 간신히 본토에 도착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우산도가 리앙쿠르 암초였다고 말합니다. 외부의 도움 없이는 리앙쿠르 암초에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우산국은 울릉도를 기반으로 한 국가를 의미하고 우산도는 섬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구별해야 합니다. 일본 학자들은 우산도가 울릉도나 죽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반면, 한국 학자들은 독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세종실록(세종실록, "세종실록", 1432)에는 우산도가 언급되어 있지만 그 문맥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 원문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울진현 정동쪽 바다에 있는 우산도(우산도 于山島)와 무릉도(무릉도 武陵島, 울릉도의 옛 이름)는 산 정상에서 맑은 날씨에 서로 볼 수 있을만큼 충분히 가깝습니다." 남한은 이것이 우산도가 맑은 날에만 울릉도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섬인 리앙쿠르 바위를 가리키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후자를 "한국 본토에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며 대신 울릉도에서 동쪽으로 2km 떨어진 죽도를 가리킨다고 믿습니다. 남측은 죽도가 울릉도와 불과 2km 떨어져 있어 고도나 날씨에 관계없이 볼 수 있으며, 항로가 한국 본토가 아닌 두 섬 상호간의 맥락에서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다고 반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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